1만원권의 외출 – 하루 동안 벌어진 일들을 돈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써봤습니다
1.지갑 속에서의 평화, 그리고 갑작스러운 빛
안녕하세요. 저는 1만원권입니다.
1982년생이라고 하면, 다들 "아직도 살아있냐"고 물어요.
맞아요, 요즘엔 제 친구들(현금)이 많이 사라졌죠.
카드, 간편결제, 페이... 요즘 세상에서 제 자리는 거의 사라졌지만, 그래도 저는 아직 숨 쉬고 있습니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외출을 하게 됐어요.검정색 반지갑 안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빛이 확!
주인이 저를 꺼내들었어요. 손끝이 약간 떨리는 걸 보니 무언가 급했나 봅니다.
드디어 나의 출동인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간직한 채, 저는 그의 손에 들려 거리로 나섰죠.

2.편의점, 내 첫 번째 사명지
첫 번째 목적지는 편의점.
어젯밤 야근을 했는지, 주인의 얼굴은 푸석푸석했어요.
그는 삼각김밥 하나와 캔커피, 그리고 껌 한 통을 들고 계산대로 갔습니다.
합계 4,200원. 계산원은 아무렇지 않게 저를 받아들고 거스름돈을 돌려줬죠.
"그래,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아침을 시작하게 해줬군."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나는 캐셔의 손을 따라 금고 속으로 들어갔어요.
그곳은 작은 동전들과 여러 색깔의 지폐들이 웅성거리는 혼란스러운 공간이었죠.
“여기선 오래 못 있어,”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그리고 정말, 10분도 안 돼서 저는 다시 꺼내졌습니다.
3.무심한 거래들 사이에서 느낀 존재감
이번엔 중학생 손에 들려졌어요.
교복 상의 안쪽에서 나를 꺼낸 그 아이는 문방구로 향했죠.
떡볶이, 튀김, 소시지 하나…
간식이 주렁주렁 쌓여도, 나는 그 아이의 작은 손안에서 씩씩하게 견뎠어요.
“어이쿠, 거스름돈 3,000원!”
문방구 주인아저씨가 말하자 아이는 눈이 반짝였고, 저는 다시 계산대 뒤 서랍으로 들어갔죠.
그곳은 무심한 돈들의 무덤 같았어요.
하지만 나는 잊지 않아요.
떡볶이를 받아든 그 아이의 입꼬리,
어린 시절 소소한 행복을 선물한 게 저였다는 사실을요.
4.다시 어둠 속으로, 그리고 나의 소망
저녁 무렵, 나는 다시 새로운 손에 쥐어졌어요.
이번엔 택시기사 아저씨였습니다.
지친 얼굴,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저녁 뉴스.
그는 나를 주유소에 내밀었고, 나는 연료로 바뀌었죠.
“겨우 2리터도 안 되네...”
기사님의 한숨이 내 귀에 박혔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내 값어치는 그대로인데, 세상이 나를 가볍게 만들어버렸다는 걸요.
이제 나는 다시 지갑 속.
기사님의 낡은 반지갑 속에 조용히 들어와, 또다시 기다리고 있어요.
다음에 나가게 될 땐, 누구의 손에 쥐어질지, 어떤 의미로 쓰일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예요.
나는 단지 돈이 아니에요.
나는 하루하루, 사람들의 선택을 따라 움직이며 작은 인생을 목격하는 존재죠.
누군가에겐 위로, 누군가에겐 피로, 누군가에겐 습관처럼 쓰이지만,
그 순간마다 나는 확실히 ‘살아있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돈이 기억하는 인간의 삶
사람들은 늘 돈을 따라가요.
하지만 가끔은, 돈이 인간들을 기억하기도 한답니다.
오늘 내가 만난 사람들 – 피곤한 직장인, 배고픈 중학생, 고단한 기사님 –
그들 모두의 삶은 짧지만 강렬했어요.
나는 그들을 통해 살아있었고, 그들이 나를 통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랐어요.
그러니까, 다음에 나를 꺼내들 때는,
잠깐이라도 “이 돈이 내 하루를 바꿀 수 있을까?”를 생각해 주세요.
그게 제가 원하는 유일한 보람이니까요.